수학을 포기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나요?
※ 이 글은 적송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한 사실 기반 에세이며, 글 흐름을 포함한 모든 문장은 적송이 단독으로 작성한 것임을 알립니다.
AI로 여러 테스트를 해 가며 내가 하는 일에 사용해 보고 있다. 그러면서 떠오른 생각 하나. 이건 청소년에게 전해야 할 듯하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지 않던가?
현대 사회에서 마이너리그로 강등된 철학과 수학이, 다시 화려하게 복귀할 것 같다.
함께 있으면 누구보다 지루했던 철학 친구, 이해하기 어려웠던 또 다른 친구 수학!
미워도 다시 한번, 우리 청소년들이 먼저 손 내밀어 보면 어떨까. 어느 학생의 실제 이야기가 바로 당신에게 일어나길 바란다.
예전에 고3 수학 포기 학생, 즉 수포자 학생을 가르쳐 본 적이 있다.
학원도 많이 다녔고 과외도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수학 최하 등급의 울타리에 갇혀 있었던 모양이었다.
당시 나는 한 명을 더 가르칠 여유가 없었다. 내가 가르치던 한 학생의 부모님께서도 이런 상황을 알고 계셨다. 하루는, 그분께서 내게 부탁할 말씀이 있다며 수업이 끝나고 잠시 시간을 좀 내어 달라고 하셨다. “어쩌다가 선생님 얘길 그쪽 부모님과 나누게 되었는데,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수업 시간도 선생님께 무조건 맞춰 드리겠다고. 이러면 어떨까요? 같은 아파트 주민인데, 이 수업 끝나고 바로 연결해서 하시면… 워낙 친한 사이라 고민 끝에 부탁드리게 되었습니다.” 난감했지만, 날 신뢰해 주신 고마움에 한번은 방문해야 했다. 그리고, 고3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수능까지 불과 6개월.. 이 부분이 더 난감했다.
그렇게 서로 약속 날짜를 잡고 방문했지만 학생은 없었고, 날 반갑게 맞이해 주신 부모님께서도 당황하고 계셨다. 우선 따뜻한 차 한잔하자며 나를 거실로 안내했다. “죄송합니다. 애가 지금 집에 없어요. 도서관을 갔는데 좀 늦을 것 같아요! 시간에 맞춰 꼭 오기로 약속했는데…” 그리곤, 남들에게 차마 하기 힘든 얘기를 솔직하게 해 주셨다. “실은 제 전화번호를 차단해 놓았어요” 그때 알았다. 내가 왔다는 사실을 연락할 길이 없었던 거다. 사실 좀 충격적이었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10여 분이 지났을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왔나 싶었다. 냉랭한 분위기에 불만 가득 찬 표정으로 부모님을 한번 째려본 후 내가 앉아 있던 식탁에 마주 앉았다. 어쩌면 잘 됐다 싶기도 했다. 이런 학생을 가르칠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진 않았다. 거절할 합당한 이유를 학생 스스로가 만들어 주는 게 오히려 다행이다. 그러나, 날 신뢰해 주신 양쪽 학부모님 얼굴을 봐서라도 좀 더 정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난 문제 풀이에 수업 시간을 잘 쓰지 않는다. 대신 수학적 정의와 정리, 그리고 논리를 주로 가르친다. 특히, 수포자 학생이라면 가장 기초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
서로 어렵게 시간을 내어 왔으니 일단 첫 수업을 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앞에서 간략하게 적은 몇 가지 등을 얘기했다. 통상의 수학 교재 순서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도 추가했다.
수업은 바로 시작됐다. 첫 출발이 될 함수의 가장 기초적인 정의만 가르쳐 주고, 부연 설명을 이었다.
함수 부분에서 사람들이 정의한 건 무엇인지, 고등학교 수학 과정에서 함수는 왜 중요한지. 내가 수학을 공부할 때 궁금해했던 ‘왜’와 공부해 가며 깨달은 ‘개념’을 설명하며 채운 시간이었다. 수업을 끝낸 후, 오늘 배운 내용을 다음 시간에 물었을 때 모르면 그만두기로 했다. 학부모님도 학생도 나도, 이견 없이 동의했다.
본인 스스로 배우려는 의지가 없으면 가르칠 수는 없다. 부담을 하나 들었다는 생각에 돌아가는 길이 가벼웠다.
약속된 날이 왔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있던 다른 학생 수업을 마치고 다시 들렀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예고한 바와 같이 복습할 겸 그만 둘 명분을 찾을 겸, 지난 시간에 공부한 정의 몇 가지를 물었다. 이런! 대답이 모두 정확했다. 어라! 이 녀석 한번 가르쳐 볼 만한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수능까지 6개월, 수업은 1주에 2회, 넉넉한 시간은 아니지만 배우려는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해 보이진 않았다. 약속대로 수업을 맡기로 했다.
앞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나는 문제를 풀지 않는다. 정의와 정리로 수학 논리가 얼마나 재미있는 지적 놀이인지 그걸 느끼게 해 준다.
공부의 즐거움을 알게 되면 학생 스스로가 해 나가게 된다. 그렇게 이끌어 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이나 부모나 조급해 하지만 않으면, 성과는 반드시 나온다. 이 학생의 학부모님께서는 더 이상 내려갈 곳도, 더 잃을 것도 없는 지점에서 서 계셨다. 또한 감사하게도 전적으로 날 신뢰해 주셨다. 그렇지만, 막상 배우는 학생은 지금껏 해온 문제 풀이식과는 전혀 달라서 낯설어 했다. 문제는 풀지 않고, 정의와 정리로 기초를 쌓아가는 공부가 실전에도 통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 속에 있었다. 반신반의하며 따라와 주긴 했다. 다행이었다. 더 내려갈 곳도 더 이상 의지할 사람도 없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그곳에서도 꽃은 필 수 있다.
그렇게 한 달이 조금 지났을까, 드디어 첫 번째 모의고사 시간이 왔고 결과는 당연히 참담했다. 시험지의 문제 번호에 온통 빗줄기가 쭉쭉 지나갔고, 소나기 사이로 간혹 둥근 해가 반짝 뜨는 정도였다. 결과를 받아 본 학생은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겠지. “이 선생 실력은 있는 건가? 좋았어, 망신을 주기에 딱 좋은 기회일지도 몰라. 아하! 오늘 밤에 수업이니, 가장 어려운 문제를 풀어 달라면 되겠다. 어디 본인이 장담한 대로 풀리나 보자! 문제에 쩔쩔 매는 모습만 떠올려도 벌써부터 기대되는데. 하하하”. 그날 밤 방문했을 때 어느 때보다 환하게 미소 지으며 날 반기는 게 아닌가? 이 녀석, 오늘은 표정이 밝네! 시험을 잘 볼 리 없었을 텐데. 나도 가르쳐 본 경험이 꽤 있어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수학 문제에서는 특정한 분야의 문제라도 한 문제를 풀기 위해선 다른 분야도 알아야 한다. 그럼, 이 미소는? 아마도 내가 예상한 대로, 날 시험해 볼 절호의 찬스로 본 모양임에 틀림없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듣기로 오늘 모의고사를 봤다지? 그럼 오늘은, 지금까지 배운 게 문제 푸는 데 어떻게 쓰이는지 틀린 문제를 함께 풀어보면서 직접 확인해 보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미리 준비해 둔 문제를 꼭 찍어 보였다. 골탕 먹일 기회라고 생각했던 상황이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꼬인 문제가 수학적 정의와 정리, 그리고 논리로 하나씩 풀렸다. 그걸 수업 내내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동안 반신반의에서 머물던 바늘 침이 의심 쪽으로 확 기울었다가 다시 신뢰 쪽으로 확 돌아선 느낌이었다. 수업이 끝날 때 즈음, 날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느끼한 눈으로. 내가 물었다. 왜? 덩치 큰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너무 멋진 데요” 이 멋지다는 말은 내가 그렇다는 건지, 아니면 문제가 이렇게 풀려 가는 게 멋지다는 건지, 그 말의 의미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확히 알 수 있는 건, 이렇게 풀려가는 수학에 재미를 붙였다는 거다. 그리고 덤으로 얻어진 건 둘 사이의 신뢰. 이제 속도를 조금 더 올려도 될 시점에 온 것이다.
그 이후 수업 태도는 바뀌기 시작했다. 부모님에 대한 태도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걸 느꼈다. 1학기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거치며 자신감은 조금씩 더 붙기 시작했다. 기말고사 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동안 수학 시간에 엎드려서 자 버린 게 너무 후회돼요!. 이렇게 재미있는 걸 왜 포기했을까요?” 내가 할 소릴 하고 있었다. 나는 숙제가 따로 없다. 있다면 단 하나, 지난 시간에 배울 걸 기억하고, 지금까지 배운 걸 복습하면서 잊어버리지 말기! 놀라운 변화는 문제 풀이 숙제를 낸 게 없는데도, 스스로 숙제를 만들어 하고 있었다. 수학 문제 푸는 게 얼마나 재미있게 되었으면, 그리고 자신감을 얻었으면 혼자서 기출 문제집을 사서 풀어볼까. 그걸 방학 내내 풀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나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변화였다.
아주 천천히 걸어가던 성적이 2학기에 접어들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젠 주변 친구들도 자기에게 와서 문제를 푸는 법을 물어보곤 한다고 자랑했다. 대견했다. 전적으로 본인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런 변화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드디어 대학수학능력 시험 전 마지막 모의고사를 본 날이 왔다. 시험을 친 후 수업은 늘 하던 대로 틀린 문제 풀이다. 날 기다렸는지, 그날 현관 문 앞에서 문을 열어 주며 미소 지었다. 언젠가 본 듯한 모습이었다. “이 녀석, 이 미소는 또 뭐지?” 문제를 풀기 위해 함께 책상에 앉았다. 시험지가 펼쳐졌다. 소나기가 지나 간 후 나오는 밝은 햇살과 같이 동그라미가 가득했다. 가끔 소나기 빗줄기도 지나갔지만, 생각 이상의 결과였다. 학생이 먼저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저 처음으로 3등급 받아 봤습니다.” 등급만 보면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이지만, 수학으로 공부하는 방법과 재미를 알 게 해 줬다는 게 나도 기뻤다. 그리곤, 수능 시간이 다가왔고, 나는 마지막 수업을 끝냈다. 다행히도 그날 문과 고등학교 전체 과정을 함께 끝냈다.
수능 시험 후 연락이 왔다. 기다리던 전화였다.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시험 답안지 어느 부분부터 한 줄씩 밀려 표기했단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수학을 공부해 보니 문과보다는 이과가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오히려 잘 된 것 같습니다. 저는 공대를 가고 싶어요. 그래서 1년 재수하면서 이과로 전향해 볼 생각입니다.” 보통은 이과에서 문과로 가는데, 거꾸로 가겠다니 한편으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꽃이 피고, 낙엽이 쌓였다.
바쁜 시간이 겹쳐서 앞으로는 과외를 할 수 없게 됐다. 수업이 아니면 자주 방문할 이유가 없던 곳과도 작별할 시간이 왔다.
마지막 수업을 끝낸 후 근처에 사는 지인과 오랜만에 소주 한잔하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지인의 아내가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그 학생도 여기서 영어를 배운다고 들었다. 술자리에서 여러 얘기를 나누다가 그 녀석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결정, 그리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다수의 사람과 다른 길을 걷고 있을 재수생. 모든 게 쉽지 않고 불안할 텐데, 그래서 마음 한편엔 걱정 반 기대 반이 남아 있던 차였다. 지인이 말을 꺼냈다 “그 OO 있잖아! 영어 수업으로 우리 집에 올 때 작년에는 나와 마주쳐도 인사조차 안 하던 애가, 이젠 날 보면 깍듯이 인사하더라. 나도 깜짝 놀랐다.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어!. 그리고, 더 놀라운 건 바로 이거야! 이과로 전환한 것도 대단한데, 얼마 전 본 모의고사에서 처음으로 수학 1등급을 받았다고 하대. 혹시 널 보면 전해 달라더라. 그동안 전화기를 없애고 독서실에서 살다시피 하느라 연락을 못 드려 죄송하다고. 또 전화기를 버리는 바람에 전호번호도…”
2010년의 가을은 그렇게 여물어 갔다.
모든 수포자 여러분! 수학을 포기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