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葛藤), 엉킴은 싸움이 아니라 함께 자라나는 방식이다

갈등(葛藤)이라는 단어는 묘하다.

葛은 칡 나무 藤은 등나무를 뜻한다. 사전적으로는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갈등은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충돌하는 것을 뜻한다.1
두 식물이 서로를 타고 오르며, 얽히고 감긴 상태가 마치 사람들 간의 충돌과 유사하다. 사람들이 이 모습에 빗대 만들어낸 단어다.  

누구나 살다 보면 갈등 상황 속에 처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마음은 괴롭고 견디기도 힘들다. 인생과 일상을 소재로 글을 써 나가다 보니, 갈등은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람의 인생에 숨어 있던 갈등의 반전과 유사한 이야기가, 놀랍게도 칡 나무와 등나무의 관계 속에서도 있었다.       

칡과 등나무는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는 덩굴식물이다. 그래서 서로를 타고 오르며 얽히고 감긴다. 언뜻 보기엔 엉켜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칡은 공기 중 질소를 다른 식물이 쓸 수 있는 형태로 바꾼다. 결국, 칡은 토양에 질소를 공급해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2, 등나무는 느리지만 더 높이 올라가며 빛의 흐름을 분산시킨다.3 서로 간섭하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생태에 기여하는 이 관계는 경쟁과 의존, 억제와 보완이 겹쳐 있는 상태, 즉, 갈등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

이런 구조는 자연에서도 반복된다.
지각판이 충돌하는 경계에서는 지진과 화산이 일어나지만, 그 속에서 산맥이 솟고 대륙이 융기하며 새로운 생태가 자리 잡는다.
충돌은 파괴만이 아니라, 정지된 질서를 흔들어 더 나은 방향으로 재편하는 계기다.

우리 삶도 다르지 않다.
조선 후기 실학은 성리학 체계와의 충돌 속에서 태어났다4. 광복 이후 한국 사회도 분단의 모순을 딛고 산업화를 이루어냈다.
가장 첨예한 갈등의 시기에야말로, 새로운 관점과 제도가 태어날 여지가 생긴다.

우리는 흔히 갈등을 피하거나 없애야 할 문제로 본다. 하지만 갈등은 전환의 징후다. 무언가가 바뀌려는 순간, 낡은 구조와 새 질서가 겹쳐지는 틈에서 갈등이 생긴다. 
칡과 등나무가 서로를 감고 올라가듯, 우리도 때로는 충돌 속에서 더 높이 자라난다. 그 엉킴은 무너짐이 아니라, 새로운 균형을 향한 필연적 과도기일 수 있다.

그러니까 갈등이라는 말은, 단순한 불화가 아니라 공존을 시도하는 생의 몸부림이라는 뜻으로 다시 읽혀야 한다.
이건 그냥 대립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이 한 공간에서 뿌리내리기 위해 싸우고 배우는 생존의 언어다.

주석1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발췌하여 간명하게 수정하였다.
주석2 헤르만 헬리에겔(Hellriegel)의 실험 및 현대 생태학연구 결과, 콩과식물(예: 콩류, 칡 등)은 뿌리혹(nodule)에 공생하는 리조비아균(rhizobia)을 통해 대기 중 질소(N₂)를 암모니아 형태로 고정하여 식물과 토양에 공급한다. 이 과정을 식물생태학 또는 토양생물학에서 생물학적 질소고정(Biological Nitrogen Fixation, BNF)이라고 한다.
주석3 칡은 빠르게 자라지만 그늘에 약하다. 등나무는 성장 속도는 느리지만, 비교적 더 높은 곳까지 도달 가능하다. 이런 경우 두 식물은 서로의 위치·속도·빛 접근성을 다르게 활용하며 일시적 공간 자원 분화로 인한 공존이 가능하게 된다.
주석4 실학은 17~18세기 조선 후기, 성리학 중심 교육체제에 대응하며, “실사구시”ㆍ“경세치용”을 강조한 실용·현실 중심 학문으로 발전. 국내 학술 및 교육 기관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실학’에 대해 기술된 내용과 우리역사넷, 실학의 성립과 성리학과의 대비 서술을 바탕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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