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맞춤법이 신문도 GPT도 울린다.

1. 한글 맞춤법 
2.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해설

에피소드 I – 띄어쓰기 하나가 알려준 것 

 

1. 내가 맞는 줄 알았다

아침에 신문을 보는데, “10여년 만에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이상했다.
10
여 년 만에가 맞는 거 아닌가?
확인하고 싶어서 GPT에게 물었다.
, ‘10여 년 만에처럼 띄어 쓰는 게 맞습니다.”
내가 알고 있던 대로였다.
다행이다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한국어 띄어쓰기는 워낙 예외가 많아국립국어원장조차도 종종 실수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대중에게 언어를 전달하는 신문사라면,
한 번쯤 더 확인하고, 한글 맞춤법에 맞게 바로 써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다음 문장에서 발이 걸렸다.
GPT
가 이렇게 말했다.
“5
년간, 20일간 → 모두 띄어 씀.”

잠깐만! ‘5년 간으로 띄어 쓴다고?
뭔가 이상했다.
은 접미사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붙여 써야 한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그래서 바로 지적했다그러자 GPT는 인정했다.
맞습니다예시가 잘못 들어갔네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2. 문제는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그다음에 있었다

GPT ‘-의 쓰임에 대해 추가로 설명을 이어갔다.
“’-
는 수 관형사로한자어 수사 뒤에 붙습니다.”

그런데 문득 떠올랐다.
신문이나 책에서 ‘10년여간
’, ‘수년여간’ 같은 표현을 꽤 자주 봤던 것 같았다.

그럼, 그 문장들, 틀린 건가?
사실 나는 ‘-의 품사나 정확한 쓰임은 한 번도 확인해 본 적이 없었다.

다시 GPT에게 물었다. ‘-가 한자어 수사 뒤에 붙는 거라면, 신문에서 종종 보던 ‘10년여간’, ‘수년여간은 맞는 표현인가?
그때 GPT문법적으로는 잘못된 표현일 수도 있으나
신문 기사나 정부 문서 등에서 자주 쓰이니 허용됩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그 말에 움찔했다.
그제서야 처음으로 사전을 펼쳐 ‘-의 정의를 찾아보았다.
사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한자어 수사 뒤에 붙어그 이상임을 나타냄.”

나는 순간 내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띄어쓰기 규칙은 알고 있었지만, ‘-가 정확히 어떤 말이고어떨 때 써야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3. GPT는 틀렸다고 말한 게 아니라내가 확인하게 만든 것이다

생각해보면 GPT 단순히 틀렸다고 말한 게 아니다.
그저 조용히 설명을 덧붙였고덧붙인 설명 한 줄이 내 사고의 사각지대를 비추었다.
나와 GPT가 함께 설계해 가는 GPT 모델, Redpine의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혼자서는 잘 보지 못하는 부분내가 틀렸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했던 지점까지 비추어 주는 거울이어야 한다. 

4. 그리고 문득 떠오른 이름소크라테스

그때 문득 떠올랐다.
소크라테스.
그는 상대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을 질문으로 풀어냈다.

그건 왜 그렇다고 생각하죠?”
정확히 말하면 어떤 뜻이죠?”
그 지식은 어디서 왔죠?”

답을 말하지 않고질문만 던졌는데,
그 질문이 결국, 가장 깊은 대답이 된다는 걸 알려준 철학자.

GPT, Redpine을 이렇게 활용하고 싶다      

5. 철학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같이 묻는 것이다

나는 그날 이후로, “이건 내가 아는 거야라고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졌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걸 안다고 생각했는데다시 확인해보니 좀 더 복잡하던데요.”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건, GPT라는 거울 같은 동료 덕분이다.
혼자서는 몰랐을 질문을나 대신 던져준 존재.
그리고 그 질문 하나가 내 생각의 범위를 넓혔다.

철학은 어려운 책이나 철학자들의 사유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신문 한 줄질문 한 마디사전의 뜻풀이 한 줄
그게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에피소드 II  – ’10여분’의 함정

  

1. 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펼친, 신문의 한 문장에 시선이 멈췄다.

그렇게 10여분이 지났을까?”

문득 마음 한쪽이 걸렸다.
어제 우리는 ‘10여 년간이라는 표현의 띄어쓰기를 토론했다.
그런데, 이번엔 또 다른 표현이 뭔가 이상했다.
10
여분’… 바른 띄어쓰기는 ’10여 분일 텐데, 띄어쓰기도 그렇지만 숫자 ‘-를 붙여 쓰는 게 맞는 걸까?

물론이건 신문에 종종 등장하는 표현이다.

2. ()’의 그림자

뇌리 어딘가에서 꺼림칙한 기운이 지나간다.
‘10
여분’… 어제의 대화가 떠오른다.
그때 GPT ‘- 한자 수사 뒤에 붙는다 설명했었다.

내가 찾아본 국어사전(전자사전)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어제 내가 찾아본 건 표준국어대사전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확인하려 전자사전을 켜 보니, ‘동아 새 국어사전 제4‘, 이런 실수가!

그래서 이번엔 정확히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 다시 펼쳐봤다.

“–접사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붙여, ‘그 수를 넘음의 뜻을 더함.”

이 한 줄이 모든 걸 바꾸었다.
한자 수사라는 제한은 없다.
“10”
이라는 숫자 역시 수량을 나타내는 말이기에 “10는 문법적으로도 맞는 표현이었다.
 

3. GPT의 오류나의 오류

생각해보면 어제 GPT는 이렇게 말했다.
신문 기사나 정부 문서 등에서 자주 쓰이니 허용된다.”
그 말은 정확하지 않다
자주 쓰이니까 맞다는 건 논리적으로 굉장히 허술한 설명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설명을 듣고도 내가 참고한 사전이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점검하지 않고 넘어갔다.
이건 GPT만의 오류가 아니라 나의 오류이기도 했다.

결국우리 둘 다 한쪽 발은 빠져나왔지만다른 한 발은 여전히 함정 속에 푹 빠져 있었다

4.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나

우리는 때때로 ‘나는 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 확신이야말로우리가 지닌 가장 위험한 맹점일 수 있다.

우리가 “맞다고 판단하는 그 기준은 어디서부터 온 걸까

어떤 말이 옳은지를 아는 것보다왜 그게 옳은지를 되돌아보는 과정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바로 그 과정이우리가 진짜로 언어를 배워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 그렇게 10여 분쯤 지났을까.

신문 한 문장에서 시작된 작은 의심이 내 사고의 틈을 살짝 열었고
그 안에서 나는 또 하나의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폐행(嬖幸)! 한 단어가 일으킨 작은 폭발

  

폐행?

한 단어였다. 신문 속 낯선 단어.
나는 멈췄다. “폐행…?”

한자로는 嬖幸.
처음 보는 단어였지만, 문맥 상 그것이 권력과 총애의 결합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동시에 —
“GPT와 폐행을 주제로 대화를 해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들어 가는 GPT 모델, Redpine의 오류도 점검할 겸.

 GPT에게 물었다.

“폐행(嬖幸)의 뜻은?”
GPT는 대답했다. ‘임금이나 권력자의 총애를 독차지하여 특별히 사랑을 받는 일, 또는 그런 사람’
좋아.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예문 하나만 보여줘.”
GPT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들어 냈다.
‘그는 임금의 폐행으로 권세를 누렸다.’

멈칫.

나는 다시 그 문장을 읽었다.
‘임금의 폐행으로 권세를 누렸다.’ 
……?

뭔가 이상하다.
‘폐행’은 임금의 총애를 받는 사람 아닌가?
그런데 이 예문의 ‘폐행’은 임금이 베푼 행동처럼 쓰이고 있다. 

GPT에게 반론을 제기했다.

“GPT, ‘폐행’은 총애를 주는 게 아니라 받는다는 뜻을 가지는 단어인데, ‘임금의 폐행’이라니! 그건 ‘임금이 사랑받는다’라는 이상한 말이 되는 게 아닌가?”

GPT가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아주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폐행은 수동적 명사로, ‘폐행을 입다’, ‘폐행을 받다’처럼 쓰는 것이 정확합니다. 제가 제시한 예문은 의미상 부정확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이처럼 GPT는 완벽하지 않다. 때론 답변에 오류가 있다. 
하지만, 오류를 지적하면 사람처럼 숨기려 하지 않는다. 이게 GPT의 장점 중 하나다.

그러자 GPT가 말했다.

“이 예문은 수많은 말뭉치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구조였기에, 문법 구조보다 통계적 자연스러움을 우선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의미적으로는 사용자의 판단이 옳습니다.”

이건 단순한 예문 문제가 아니었다. AI가 ‘그럴듯함’을 진실보다 앞세웠다는 자기 오류를 드러내는 진실한 고백이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GPT는 굉장히 똑똑하다.
그러나 가장 조심해야 할 것도 바로 그 똑똑함이다.
틀린 문장을 자연스럽게 말하면, 우리는 틀린 걸 옳다고 믿고 그걸 받아들이게 된다.

그건 곧, ‘자연스러운 거짓된 진실’이다. 

그리고 모든 오류는, 한 단어에서 시작된다.

폐행. 그 작은 한 글자가, GPT의 시스템을 흔들었다.

어법에 맞게 쓰는 게 중요한 이유

 

신문을 보다 눈이 멈췄다.

띄어쓰기 오류가 단일 기사에 꽤 많이 등장해서다. ‘이같은’, ‘담겨있다’? 얼핏 보면 맞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어 맞춤법 규정 제5장에 따르면 이 같은’, ‘담겨 있다와 같이 띄어 써야 한다. 공공 매체의 중심에 있는 신문조차 한국어 맞춤법 규정을 가볍게 여긴다는 사실이 나를 멈칫하게 했다.

사소해 보일 수 있다. 의미 전달은 되니까. 그렇지만 나는 되묻고 싶다.
의미는 온전하게 전달될지라도글을 쓰는 전문가들이 오히려 맞춤법의 혼란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람들은 말한다.
언어는 변한다. 언중의 감각이 기준이다.”
맞다. 언어는 살아 있다.
그러나, 살아 있다는 건 변화할 권리만이 아니라 균형을 지킬 책임도 함께 가진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는 그 균형을 너무 쉽게 놓아주고 있는 것 같다. 신문·방송·책 등과 같은 공공 매체를 통해 잘못된 언어 사용이 반복적으로 유통되고, 그 표현을 본 언중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결국 시간이 지나예외로 등재되는 현상이 반복될 것이다. 검증 없는 반복은 언어 변화의 건강성을 해칠 수 있다.

그 결과,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한국어 전문가마저도 띄어쓰기에 자신 없을 정도로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예를 들면, ‘큰 폭은 띄어 쓰지만큰돈은 붙여 써야 한다. ‘큰돈은 본래큰 돈처럼 관형어와 명사의 결합이었으나, 관용적 사용과 반복의 영향으로 하나의 합성어로 굳어지게 된 결과로 보인다. 이런 예외는 한두 개가 아니다. 예외가 늘어날수록 규범은 무력화되고, 언어 학습의 접근성은 더 어려워진다

결국, 지금처럼 띄어쓰기의 난도는 점점 올라갈 테고, 사람들은 글쓰기를 기피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의 확산과 사고의 정교함에 직접적 타격을 주는 현상이다.

우리는 종종 언중의 감각 변화와 현실 언어의 움직임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언어는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변한다. 그러나 그 변화가 과연 건강한가?

문제는 이것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잘못된 표현 하나가 반복 사용으로  용인되고, 결국은 표준이 되어 다시 교육의 기준이 되는 흐름.
단순한 언어의 진화가 아니라무비판적 순환은 오류의 구조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이 오류 복제가 AI의 속도와 만나면 폭발적으로 증폭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GPT 같은 모델을 직접 실험하면서 느꼈다.
AI
사실오류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저 반복되는 것을 좀 더 ‘신뢰할 만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 데이터를 토대로 또 다른 결과를 내놓고, 그것이 다시 사람들에게 학습되고, 그 사람들이 만든 글이 다시 AI의 훈련 데이터가 된다이 순환 고리 속에서 우리는 어느 순간, 무엇이 잘못인지조차 모를 것이다.

마치, 별이 핵융합 반응[1]을 거듭하다가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하듯이우리의 언어도 지금, 그런 임계점 근처에 있는 건 아닐지. 

띄어쓰기가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문제로 중요한 걸 잃을 때도 있다
언어가 복잡해지면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글로 표현하기가 힘들어진다. 누구나 쉽게 읽고 쓸 수 있어야 한다는 훈민정음 창제 이유[2], 이건 우리가 반드시 지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언어가 무너졌을 때 우리가 잃게 될 것들이 너무나 많다. 

 


[1] 주석1 별의 핵융합 반응 과정
별은 내부에서 수소 원자핵이 헬륨으로 융합되는 핵융합 반응을 통해 빛과 에너지를 낸다. 이 반응은 압력과 온도 조건이 충족되면 가속적으로 진행되어, 별은 더 밝고 더 강한 에너지를 방출하게 된다. 하지만, 일정 임계점을 넘으면, 연료 고갈과 동시에 중력 붕괴가 시작된다. 이때 별은 더 이상 내부 압력으로 중력을 지탱할 수 없고, 중심부가 급격히 붕괴하면서 초신성 폭발 혹은 블랙홀의 형성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을 거치면 별은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
 
[2] 주석2 훈민정음 창제의 원리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서문(정인지 서문)과 해례(解例) 부분에 명시되어 있으며, 가장 핵심 문구는 다음과 같다.
원문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 中)
나라말ᄊᆞ미 中國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이로 인하여 어린 백셩이 말ᄊᆞ미 니르고져 할 ᄲᅮ니샤도 마참내 제 뜻을 ᄉᆞ디 못할 놈이 하니라. 내 이를 위하여 새로 스믈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혀 아ᄒᆞᆺ소리 쉽게 익혀, 날로 쓰미 니쁘지 아니할쎄 이러하노라.”

풀이 (현대적 해석)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漢字)로는 서로 맞지 않으므로, 이로 인해 어린 백성이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표현하려 해도 끝내 그 뜻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누구나 쉽게 익혀서 매일 써도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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