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수학자 G.H 하디를 통해 본 인간 – 장점과 단점, 그 너머
하디를 천재 수학자로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만, 나는 그를 인간으로 바라보고 싶다. 하디가 쓴 에세이 『어느 수학자의 변명』(A Mathematician’s Apology)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이다. 그는 순수 수학만이 진정한 학문이며, 응용이나 해설은 하찮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하디가 남긴 몇몇 문장에서 또 다른 면모를 보았다.
첫째, 자연을 경외한 자. 그는 수학적 정리는 인간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본래 존재하던 실재를 우리에게 관찰되어 기록한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 말은 수학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이며, 동시에 자연에 대한 겸허함을 드러낸다.
둘째, 감사할 줄 아는 자. 하디는 한 교수가 추천해 준 책을 통해 수학의 놀라움을 처음 깨달았고, 바로 그 경험이 하디의 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한다. 그때의 감동은 오랫동안 내면에 남았고, 그 감정을 글로 남겼다.
셋째, 진심으로 인정할 줄 아는 자. 그는 자신이 늦게나마 원숙해진 것이 리틀우드와 라마누잔 덕분이라고 말한다. 특히 라마누잔처럼 무명인이었던 인물을, 누구보다 먼저 천재적 재능을 알아보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그것은 학문적 실력 이전에,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아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디 또한 인간이기에 적잖은 흠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누구보다 불완전한 사람이었다.
첫째, 시야가 좁았다. 순수 수학만이 고결하다고 믿고, 응용 수학이나 해설은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여겼다. 타 분야에 대한 무지와 오만이 글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둘째, 나이 들어서도 미성숙한 구석이 있었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그는 여전히 이분법적이고 기계론적1 세계관을 넘어서지 못한 듯 보인다. 그 안에는 자기 성찰보다는 방어와 고집이 더 짙게 배어 있다.
셋째, 그는 해설을 2류의 일이라 비하했지만, 정작 자신은 그 2류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수학의 정상에 올랐던 인물이, 수학을 소개하는 글에서는 숲을 조망하지도, 나무를 섬세히 그려내지도 못했다. 2류가 아니라, 3류의 해설에 머무른 듯한 아쉬움을 남긴다.
이처럼 하디는 모순된 존재다. 누구나 하디처럼 장점과 단점을 함께 안고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고, 어떻게 타인과 관계 맺는가이다.
하디의 장점은 본받을 만하고, 단점은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 즉, 돌려서 생각해 보면 단점 자체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디의 편협함은 우리에게 열린 시선의 필요성을 가르쳐 주고, 그의 미성숙함은 나이와 성취만으로는 성숙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의 오만은 우리가 겸손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한 셈이다.
모든 인간은 배우는 존재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배우게 하는 존재다. 우리가 진심으로 사람을 바라본다면, 누구에게서든 반드시 배울 점은 있다. 본질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다만 우리에게 관찰되어 제 모습이 드러나기를 기다릴 뿐.
주석 1. 기계론은 자연 현상을 기본 구성 요소의 상호작용에 기반한 인과 체계로 설명하는 관점으로, 전체를 잘게 쪼개고 구성 요소의 조직 관계로 작동을 이해하려는 철학적 전통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