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수국이 몸으로 보여준 인생 교훈

집 근처 공원에 수국이 피었다.
수국(紫陽花, 영어: hydrangea, 학명: Hydrangea macrophylla)은 관상용으로 널리 사랑받는 꽃이다. 6월 장마 무렵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꽃을 피운다.
다른 꽃보다 수수하지만, 다발로 만들어 내는 화려함은 그 어떤 꽃도 흉내내기 힘들다. 걸어가다가도 시선은 이내 수국으로 쏠린다. 그러다 문득 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수국은 꽃의 무게나 크기에 비해 유독 연약한 줄기를 가지고 있다. 요즘은 장마철이고 예전과는 다르게 바람도 강하게 분다. 곧 또 비가 올 텐데, 비바람에 괜찮을까? 살짝 걱정스럽다.
비가 내린 다음 날 아침, 지나다가 수국을 봤다. 다행이다. 여전히 꽃은 예쁘게 펴 있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 싶을 때, 목이 꺾인 수국(사진의 왼쪽 하단에 있는 수국)이 보였다.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되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줄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꽃을 피우면 결과는 시간 문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인생사를 수국이 대신 말해주고 있구나!”
사람도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옷을 입으면 옷자락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우린, 자신의 능력 이상의 것을 가지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간다. 운이 좋게 혹은 편법으로 가질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을 너무 부러워하거나 시기하지도 마시라. 제 발에 걸려 넘어질 일만 남았으니.
타산지석이라 하지 않았던가. 본인의 능력이 부족할 때는 갖춰질 때까지 기다리고, 능력 이상의 것이 찾아왔을 때는 사양할 수 있어야 한다. 똑같은 처지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역사에서도 수많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조선 인조 때의 김자점이다. 영의정까지 지냈지만 결국 목이 잘려 죽었다. 부정한 방법으로 능력에 비해 너무 과한 옷을 입었던 결과다. 역사는 똑똑히 기록하며 후세에게 교훈을 준다. 우리가 더 눈여겨봐야 할 건 죽어서도 회자된다는 것이다. 애써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이런 사례는 지금도 널렸다. 그게 뭐지?라고 반문한다면, 안 보거나 못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수국은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무게의 꽃으로 죽어갔지만 바라보는 이에게 행복감을 안겨 줬다. 이는 자기희생의 아름다움이다.
사람의 경우는 어떠한가. 다른 사람의 행복감까지 빼앗아 간다.
새삼 수국이 달리 보이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