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과 이타심의 아이러니, 그리고 새옹지마를 증명해 보다

 

이기심은 처음엔 달콤하다. 이기적인 선택이 빠른 보상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그게 익숙해지면 다음에도 자신에게 유리한 쪽을 고르게 된다.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되는 악순환의 시작인 셈이다.
사람들은 서서히 멀어지고, 결국 남는 건 외로운 인생밖엔 없다.

반대로, 타인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삶은 자신을 더 윤택하게 만든다. 
이건 교과서에 나올 법한 도덕 교훈만은 아니다. 내 인생을 통해 증명해 보았다. 

나는 많은 실패를 겪어왔다. 학창 시절, 동양 철학서를 자주 읽었고, 그 영향으로 어쩌면 피곤한 길을 선택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새옹지마, 전화위복 같은 말을 현실 속에서 시험해 보고 싶었다. 사실 논리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믿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어쩌면 나는 두 가지를 동시에 시험해 온 셈이다. 새옹지마의 진실과 이타심의 아이러니. 
결과를 확인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새옹지마가 성립하려면, 반드시 시련이 있어야 하니까. 

많은 시행착오가 없었다면혹은 편한 길만 택해왔다면 지금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날 위해 글을 쓰려 했다면 더욱 그렇다. 
독자를 위한 글쓰기는 잘 읽혀야 하고 아무리 어려운 내용일지라도 쉽게 쓸 줄 알아야 한다. 이건 굉장히 어렵고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다양한 책과 좋은 글을 반복해서 읽었다. 신문도 여러 종류를 구독하며 수년간 꾸준히 읽어야 했다. 쓰는 법도 배워야 해서 잘 적힌 글쓰기 책을 십수 권 찾아 읽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직접 쓰고 또 써 보고 있다. 

독자를 위한 글쓰기를 시작한 덕분에, 나는 느리지만 분명히 성장해 올 수 있었다. 책 속에 담긴 통찰들이 내 시야를 좀 더 깊고 넓게 만들어 줬다. 그 결과, 노후 걱정을 덜하게 되었고, 원할 때 원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내가 원하는 일에 시간을 온전히 쓸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이 자체가 바로 ‘새옹지마의 진실과 이타심의 아이러니‘를 증명한 게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만약 한 분야의 논문만 읽으며 그 안에만 갇혀 살았다면 지금과 같은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가 되었거나, 좁은 시야 속에서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착각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 길의 끝에는, 불행과 후회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좌절에 빠져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을 위해 글을 쓰고자 했던 일이, 결국은 나 자신을 위한 최고의 길이 되었다.
이처럼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안다. 그러니 삶을 함부로 버리지 마시라. 힘든 시간이 오히려 당신을 성장시키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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