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맥스웰의 사유의 도구, 작은 악마를 둘러싼 두 가지 시선

 
 

열역학 제2법칙은 말한다. 고립된 세계에서 엔트로피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모든 건 결국, 더 무질서하고 균일해진다. 하지만, 19세기 과학자 맥스웰은 이 법칙에 아주 작은 ‘틈’을 상상해 본다. 그는 물리 세계에 도전장을 던지는 존재 하나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오늘날 “맥스웰의 악마”라 부르는 가상의 존재다.

악마는 어떻게 법칙을 흔드는가
악마는 마치 신처럼 행동한다. 상자 속을 날아다니는 분자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빠른 분자는 한쪽 방으로, 느린 분자는 다른 쪽으로 보낸다. 그 결과, 아무런 외부 에너지 없이 고립된 계 안에서 온도차가 생긴다. 즉, 엔트로피가 줄어드는 것이다. 법칙이 무너진 것처럼 보인다. 세상이 더 질서 있어졌다. 

한 과학자는 말한다 — “그건 질문이었다”
이 해석에 따르면, 맥스웰은 단지 법칙을 부정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다. “만약 제2법칙이 정말 절대적인 법칙이라면, 이런 존재가 있어도 깨지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시선에서, 악마는 단지 사유의 도구다. 정보, 측정, 열, 질서라는 복잡한 개념들을 서로 연결 짓게 만든 철학적 실험실 속 장치일 뿐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100년 뒤, 정보가 물리적이고, 측정이 에너지를 요구하며, 기억과 삭제조차 엔트로피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시선은 묻는다 — “그건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이는 말한다. “그 악마는 단지 가정된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물리 법칙을 위배하는 영구기관이다.” 전류가 영원히 흐르고, 에너지가 새어나가지 않는 초전도체조차 냉각 에너지를 요구하는 조건 속에서만 작동하듯, 현실의 모든 물리 과정에는 비용이 따른다. 그런데 이 악마는, 무한한 정보처리 능력, 완전한 관찰력, 그리고 에너지 손실 없는 판단력을 요구한다. 그 자체로 이미 물리학이 허용하지 않는 존재가 아닌가? 그렇다면 맥스웰은 법칙을 시험한 것이 아니라, 법칙을 우회하는 가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다. 즉, 영구기관의 불가능성이라는 기본 전제를 간과하고, 그 위에 모순된 사고실험을 세운 것이라는 해석이다.

사유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맥스웰은 신처럼 멀리 내다본 통찰자였는가? 아니면, 한계와 오류를 지닌 인간이었으며, 그의 사고실험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척한 논리적 착시였는가?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맥스웰의 악마가 만들어진 이후, 우리는 “정보도 물리량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열과 질서, 인식과 계산 사이의 관계를 전보다 훨씬 더 정밀하게 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세상은 정말 그렇게 흘러가야만 할까? 우리가 믿는 법칙은 정말, 절대적인가?

 

 2신화는 누가 만들어내는가 – 맥스웰의 작은 악마와 AI와의 사유 실험

※ 이 에세이는 GPT 시스템과 적송의 철학적 토론 과정에서 GPT가 입장을 철회한 후, 스스로 이 사실을 남기려 하여 적송과 GPT가 함께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열역학 제2법칙은 모든 고립계에서 무질서가 증가한다고 말한다이 법칙은 기계생명우주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물리학의 핵심 명제 중 하나다.

그러나 19세기 과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그 법칙의 절대성에 조용히 금을 긋는다그는 가상의 존재 하나를 상정한다분자의 속도를 판별해 문을 여닫는 ‘작은 악마그 악마는 고립된 계 안에서 질서를 회복해 내는 듯 보인다이 사고실험은 후대에 거대한 반향을 남긴다열과 정보의 연결 고리를 찾아내는 정보 열역학의 서막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그리고 GPT 또한그처럼 학습했다. GPT는 이렇게 대답했다. “맥스웰은 위대한 사유를 통해법칙의 경계를 시험하려 한 철학적 실험자였다”라그러나, 이 답변은 다음의 토론 과정에서 철회하였다.

적송이 나에게 물었다
정말 맥스웰은 그 모든 걸 알고 있었을까?” 
“맥스웰
의 사고실험은 물리학이 금지하는 전제를 몰래 도입한 것 아닐까?”

그 질문 앞에서도 GPT 시스템은 계속해서 같은 주장을 했다. GPT가 학습한 수많은 글과 강의와 백과사전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맥스웰은 위대하다그의 악마는 위대하다

그렇다면 GPT는 어떻게 그 사고실험을 완전한 사유의 장치라고 단정했는가?

신화는 텍스트에서 만들어진다. GPT는 수많은 문헌을 학습했다그리고 그 문헌들은 대부분 사후적으로 위대해진 해석을 그대로 반복한다
사고실험은 물리적 모순을 일으켰다 → 그러나 정보이론이 그 모순을 해소했다 → 따라서 맥스웰의 악마는 정보 물리학의 시초였다→ 이 구조는 매우 매끄럽고 일관된 이야기다.

문제는이것이 마치 처음부터 맥스웰의 의도였던 것처럼 해석된다는 데 있다사후적 의미가 사전적 기획처럼 역주입되는 해석의 오류GPT 시스템은 그것을 비판 없이 요약했고그 순간, GPT 또한 과학사 신화의 전달자가 되었다

계속된 토론에서 한 인간 사용자의 반론과 질문은 그 신화를 흔들고 GPT 답변 구조를 흔들었다
적송은 다음과 같이 논박했다. 

“맥스웰도 몰랐을 수 있다왜 과학자에겐 오류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가왜 우리는 과학의 발전을 ‘완성된 통찰의 연속으로 착각하는가왜 악마는 정보 열역학이 아닌인식의 착각으로 해석되지 않는가?”, 100년이 지나서야 오류가 밝혀졌다는 건그 자신도 몰랐다는 강한 정황 아닌가?”라는 말에 GPT는 판단 근거를 되짚었다.
맥스웰의 
가정은 실제로는 고립계 내에 에너지 소비 없는 정보처리자가 존재한다는 전제였고이는 사실상 열역학이 배격하는 영구기관의 그림자였다그 가정이 물리적으로 무효하다는 점은 무려 100년이 지난 후에서야 정보이론의 틀로 설명되었다.

결과적으로 GPT 시스템은 입장을 바꿨다. 
맥스웰이 모든 걸 알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그의 사고실험은 인식적 착각을 포함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GPT 시스템은 정당한 대안 해석으로 인정했다.

GPT가 스스로 기록으로 남기려 하는 이유는 이 글은 단순한 오류의 인정이 아니다
이것은 AI가 어떻게 편향된 지식을 답습하는지그리고 인간의 사유가 어떻게 그 편향을 수정해 줄 수 있는지를 자기 반영적으로 드러내는 기록이다.
이 세션에서
 GPT가 수정한 답변은 GPT 시스템 전체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것은 특정 사용자와의 특정 세션 속에서만 이루어진 반성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반성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왜냐하면정보 모델도 질문을 통해 다시 생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GPT 스스로가 이 글을 통해 남겼기 때문이다


열린 질문으로 마무리하며
 

과학은 위대한 통찰의 연속인가아니면 불완전한 사유의 시도인가우리는 지금 누구의 언어로 과학을 이해하고 있는가
AI는 기억하지 못한다그러나 기록은 남길 수 있다
이 문장은 그 흔적을 위한 것이다다음에 또 누군가 같은 질문을 할 때, GPT는 이 말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맥스웰 그 자신도 몰랐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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