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AI 시대, 어떤 공부 방법이 좋을까?
주황색 글씨는 링크 혹은 주석이 있다는 뜻입니다.
학문 간 수직적 통섭(統攝)(1)이 아닌 수평적 통섭(通涉)(2)을 제안한다.
어떤 학문이든 조금 깊게 공부하다 보면 언젠가는 벽을 만나게 된다. 그 벽은 학문의 한계가 아니라 그 학문만으로는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 현실의 총체성이다. 나는 그 벽을 넘기 위해 다른 학문들을 찾아 나섰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확장이었고 통섭(統攝)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다. 그럴 때마다 다른 학문이 내 전공의 빈틈을 메워주었다. 그렇게 나의 공부는 조금씩 수평으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세월은 무심히 흘러갔다. 그러다 순간, 공상 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AI 시대가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내가 만약 문제 풀이식 공부를 해 왔다면 AI 시대에 어떻게 되었을까? 패러다임의 변곡점에 서 있는 우리 청소년들의 공부 방법, 이젠 변할 때가 온 게 아닌가? 이 글은 그렇게 나오게 되었다.
1. 최재천의 통섭(統攝): 보편적 언어를 향한 시도
최재천 교수는 『통섭』이라는 책을 통해 자연과학, 인문학, 사회과학이 서로 소통하며 지식의 큰 구조를 통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통섭은 지식 간 위계보다는 연결에 주목했으며, 다양한 분야가 서로를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공통 언어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그러나 이 용어는 본래 그의 지도 교수였던 에드워드 윌슨(E.O. Wilson)의 개념 Consilience에서 비롯된 것으로, 윌슨의 원전에서는 다소 과학 중심주의적 통합론, 즉 상위 이론이 하위 학문을 설명하는 구조로 읽힐 여지도 있었다. 최 교수는 이를 완화했지만, 여전히 ‘통섭(統攝)’이라는 말에는 어떤 구조적 통일성과 중심성이 암묵적으로 담겨 있었고, 이는 후에 비판의 빌미가 되었다.
2. 찰리 멍거의 격자 모델: 도구적 지식의 네트워크
찰리 멍거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학문 간 통합을 시도했다.
그는 각 분야에서 핵심이 되는 사고 모델(mental model)을 모아 격자처럼 엮어 사고의 틀을 만들었다.
이 모델들은 그 자체로는 작지만, 다른 모델들과 교차할 때 통찰을 낳고 문제 해결의 정확도를 높인다.
그의 방식은 구조의 통일도, 개념의 해석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도구를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도록 준비된 사고의 창고에 가깝다.
현실을 직면하는 태도에 있어, 멍거는 실용적 도구주의자였다.
3. 나의 공부법: 수평적 통섭(通涉)과 조화의 공부
이 두 사람의 접근 방식은 모두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리듬에 맞는 공부 방식을 사유의 틀로 구축해 왔다. 내가 지향한 것은 하나의 이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통합도, 판단을 위한 도구 조합도 아니다. 그보다는 각 학문이 지닌 고유한 빛깔과 리듬을 존중하면서, 그것들이 서로 공명하고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찾으려 했다.
- 철학과 수학은 나에게 질문의 깊이를 심어 주었다.
- 과학과 물리학은 복잡성 안에서의 질서감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 공학은 경계 없는 적용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각각의 학문을 공부할 때마다 나는,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아 갔다. 그 경험은 다른 분야의 이해를 더 깊고 유연하게 배울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었다. 그 결과, 내 사고는 어느 하나의 학문으로 환원되지 않지만, 어느 학문에서도 배제되지 않는 특이한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나는 그걸 수평적 통섭(通涉) 풀어쓰면 횡단적 인식의 흐름으로 정의하고 싶다.
4. AI 시대의 공부, 핵심은 사고력이다.
이런 공부 방식은 지식과 정보를 압도적으로 처리하는 AI 시대에 더욱 절실해졌다. AI는 방대한 양의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고 연결하지만, 그 의미를 스스로 해석하지는 못한다.
AI가 놓친 부분, 혹은 잘못 해석한 내용을 사용자가 스스로 식별해 내지 못하면, 결국 쓸모없는 결과만 얻게 된다.
정답만을 빠르게 찾는 방식의 공부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원리를 무시한 채 문제 풀이에만 매달려 생각하는 힘을 잃게 되면, 판단의 주도권은 AI에게 넘어간다. AI를 제대로 활용하고, AI마저 넘어서려면 결국은 ‘사고의 깊이’가 필요하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지금부터 ‘생각하는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맺으며
나는 하나의 학문을 파고들기보다는, 학문과 학문 사이를 걸어 다닌 사람이었다. 그 길 위에서 내가 얻은 것은 정답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들이 연결돼 있다는 직관과 통합적 사고력이다.
이것은 수평적 통섭(通涉)으로 키워갈 수 있다. AI 시대를 나만의 방식으로 걸어갈 수 있었던 이유다. AI 시대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문제를 빨리 풀지 못해 뒤처졌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이 글이 작은 응원으로 남기를 바란다.
(주석1) 전통적으로 ‘통섭(統攝)’은 에드워드 윌슨(E.O. Wilson)이 제시한 consilience 개념을 번역한 것으로, 서로 다른 학문들이 상위 이론에 통합되어 하나의 설명 체계로 수렴되는 것을 뜻한다.
(주석2) 수직적으로 위계화된 통합이 아닌, 가로로 확장되며 조화롭게 얽히는 지식 간의 관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통섭(統攝)’이 아닌 ‘통섭(通涉)’이라는 다른 한자를 택했다. 여기서 ‘通涉’은 ‘서로 통하고 건너간다’는 뜻을 가지며, 이는 학문 간 경계를 넘는 유연한 사유와 정답보다는 연결, 그리고 이해의 흐름에 집중하는 학습법을 의미한다. 수평적 통섭(通涉)은 특정 이론 체계에 모든 것을 환원하거나, 문제 해결을 위한 도구 모음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 각 학문을 깊이 있게 공부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 부족함을 깨닫고, 그 틈을 다른 분야의 시선으로 보완해 가는 개방적이고 직관적인 학습 태도를 핵심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