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關心), 세상을 다시 만나는 마음의 시선

 

뉴스에서 흘러나온 짧은 속보 한 줄.
미국이 이란 핵 시설을 공격했다는 보도였다.
그 한 줄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중동은 왜 늘 전쟁의 불씨 위에 놓여 있는가.

관심은 나를 중동의 분쟁과 이슬람 문화로 이끌어 갔다. 그 관심은 실마리가 되어 연이어 다른 궁금증을 낳았다. 1980년에 시작된 이란과 이라크 전쟁, 시아파와 수니파의 분열, 그리고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에 대한 물음까지.
단편적 퍼즐이 조금씩 연결되며 하나의 거대한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생을 돌이켜 보면 시작은 언제나 ‘관심’이었다.
그 일이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마음이 붙드는 순간이 있다. 관심은 그렇게 조용히 우리를 움직인다.

사람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이 없다면 추측으로 사람을 판단하게 되고, 종종 오해라는 이름으로 굳어진다.
우리가 누군가의 처지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때, 밑바탕에는 무관심이 깔려 있다. 이해는 관심에서 비롯된다.

관심은 사물에게도 말을 걸게 만든다.
예전에 수국을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장마철, 꽃에 비해 너무 연약했던 줄기 하나가 끝내 꺾여버린 장면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무게, 그로 인한 꺾임.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모든 사유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관심’에 있었다. 그냥 스쳐도 될 꽃을 유독 한 번 더 바라본 일.
관심이란 그렇게, 어떤 존재를 향해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다. 마음이 닿을 때 비로소 ‘이해할 준비’를 하게 된다.

관심은 ‘의식 없이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행위다.
‘의식 없이 보는 것’이 시선을 머무는 일이라면, 관심은 그 시선에 마음을 싣는 일이다.
무심히 스치는 대신 멈춰 서서 한 번 더 바라보는 일, 말 없는 대상에 말을 걸어보는 일이다. 그러면 새로운 세계가 내 안에 들어온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꽃 한 송이를 예로 들어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는 그 꽃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과학자는 꽃의 구조와 광합성을 설명한다.1
사람들은 종종 과학적 설명이 꽃의 아름다움을 망친다고 생각하지만, 파인만은 오히려 “과학적 지식 덕분에 꽃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꽃에 대해 알고자 했던 마음 다시 말해 꽃에게 마음을 준 순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새로운 꽃을 피운다.
꽃의 미세한 구조, 빛과 색의 작용, 생명 메커니즘까지 들여다보게 만든다. 관심은 존재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우리를 이끈다.

비슷한 예는 일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아이가 “괜찮아”라고 말할 때, 정말 괜찮은지 아닌지 표정과 말투만으로도 알아차린다.
다른 사람에겐 그저 평범한 대답처럼 들리지만 부모는 느낀다. “지금은 진짜 괜찮다는 말이 아니구나.”
관심이 없으면 들리지 않는 신호가 관심이 있을 때는 말보다 먼저 마음에 와닿는다.

두 예시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음을 주는 행위에서 이해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존재를 다시 만나게 하는 첫 번째 문이다.


 

주석1. Richard P. Feynman, The Pleasure of Finding Things Out, Perseus Books, 1999. 
“I have a friend who’s an artist and has sometimes taken a view which I don’t agree with very well. He’ll hold up a flower and say, ‘look how beautiful this is,’ and I’ll agree. Then he says ‘I as an artist can see how beautiful this is but you as a scientist take this all apart and it becomes a dull thing,’ and I think that he’s kind of nutty. First of all, the beauty that he sees is available to other people and to me too, I believe. Although I may not be quite as refined aesthetically as he is … I can appreciate the beauty of a flower. At the same time, I see much more about the flower than he sees. I could imagine the cells in there, the complicated actions inside, which also have a beau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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